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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화해 85호] 권두 인터뷰-고은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작성자 : 민화협 / 읽은수 : 291 / 날짜 : 2017-05-10




권두 인터뷰

 

 

고은 시인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통일은 깜깜한 미래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고은은 2006년부터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애환과 함께 끈질기게 살아남은 우리의 언어를 소중히 담아 후대들에게 남겨주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다가올 통일은 단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눈 시린 창조여야 한다고 말하는 고은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담 임강택 민화협 정책위원장·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Q. 지난 23일 이탈리아 로마재단이 수여하는 국제시인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물론 그동안 다양한 국제 시 축제에서 문학상을 수상하셨지만,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국제시인상을 수상하셔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국제 시 축제가 얼마나 있는지요.


A. 유럽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등 여럿 있어요. 100년 가까이 된 축제도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이나 조금 알았지 세계의 모든 시 축제나 문화 동향에 대해서는 아직 깜깜한 것도 많아요. 아시아에도 중국에는 아주 많고, 인도도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시 축제는 없습니다.


Q. 수상기념 강연의 말씀도 시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의 시는 첩첩이 고난을 견뎌온 한국어 속에서 태어났고 한국어는 거의 기적처럼 연면(連綿)이 이어와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실제로 우리 언어가 드물게 살아남았습니다. 대체로 동북아시아 여러 언어들이 거의 다 전멸했어요. 마지막으로 남은 게 몽골어 정도입니다. 제가 아는 것만 약 20개의 언어들이 동북아시아 대륙권에 있었는데 중국어와 중국 대륙의 방언은, 한자라는 거대한 문자 언어의 위력에 삼켜진 것입니다. 우리말도 온갖 수난을 많이 겪으면서 살아남았어요.


언어는 그 민족 운명의 기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과 글이 사라지면 정체성도 곧 사라지게 됩니다. 겨레말큰사전을 편찬하면서 이것은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실제 고려인, 조선족 등 우리의 언어를 가지고 다른 생존 지대를 찾아서 흩어져간 동포들의 사례만으로도 벌써 200년 이상의 이산과 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많은 시련을 겪어가며 황무지를 개척하고 살아남았어요. 도저히 벼농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땅에다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어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것이 바로 한인 동포, 우리 배달겨레입니다. 거의 한적한 생존을 이어 나간 것이죠.


그들이 그래도 2, 3세까지는 근근이 우리 모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옛날 언어들이죠. 하지만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잖아요. 그래서 그 언어들을 최대한 채집하려고 노력했어요. 일본 동포들, 미국 동포들의 언어도 채집하여 참고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남북관계가 점점 경색되면서 활발한 모어 채집을 못했죠. 그래서 우선 지금은 그동안 몇 번 시도된 것을 자료로 쓰고 그것을 남북 언어에 아우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고려인, 조선족의 언어들이 전부 사라지고 있어요. 자신의 정체성은 알지만 고려어, 조선어가 필요 없게 되는 것이죠. 연변이 지금 공동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언어가 자꾸 공동화됩니다. 큰 위기죠. 앞으로 연변대학의 조선문학과 등이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소수민족의 언어는 앞으로는 민족의 의지를 지탱해 나가기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우리 언어는 조선시대에는 천한 글로 핍박받았고, 일제의 강제 합병으로 아예 불법화가 되어버렸죠. 나는 1930년대 모어와 모어문자를 빼앗긴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제삿날에만 조상에게 우리 언어를 한두 마디 할 수 있었던 그런 밤이 기억납니다. 낮에는 일본어를 써야 했고요. 그러다 1945년 여름이 왔어요. 그날은 특히 나에게는 모어를 찾은 모어 해방의 날입니다. 그 당시의 감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대담을 나누고 있는 고은 이사장과 임강택 민화협 정책위원장. 



2015년 10월 12일 금강산에서 진행된 제24차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 회의에서 고은 이사장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기적처럼 우리와 함께 해온 우리말, 소중히 담아 후대에 전해주어야

 

Q. 그러한 기억과 소중함이 지금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에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내 개인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동료들이 하는 사업에 나도 동참하고 있을 뿐인데, 내가 모국어에 의해 살았고, 모국어로 내 운명인 시인 생활을 해왔고, 모국어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존재 아닙니까. 그동안 혹사한 이 모국어에 대한 어떤 보은과 감사가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러 어려움도 겪었지만 내 이름도 걸어서 여러 남북 국어학자, 사전학자들과 함께 이 사업을 10년 동안 진행해왔죠.


Q.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이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오늘은 분단이지만, 어제도 분단이었지만 우리는 미래가 분명 있어요. 그때는 분단이 정말 하나의 아픈 추억으로만 남을 겁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어떤 문화유산으로서의 표상인 우리 언어를 조금이라도 왜곡되지 않게 바르게 전달해 줄 수 있는 방법이 뭐냐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로 사전일 겁니다. 물론 이것이 당장 만들어진다고 해서 남북의 생활이 바로 이 사전을 쓰는 것은 아닐 겁니다. 남북 모두 나름의 사전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남북의 사전 모두 불완전하고 부족한 점이 많아요.


우리는 그동안 서구어의 편찬사업처럼 치열한 토론과 고민을 통해 단어를 하나하나 선택하고 사전을 만들 기회가 담보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늘 임시적이었습니다. 이제 기초 단계입니다. 우리는 사업을 통해 북한의 사전 오류도 많이 지적하고, 북한도 우리에게 지적을 해요. 이번에 우리가 만드는 사전은 기초 단계에서 적어도 한 단계는 넘어서지 않을까 보고 있습니다. 물론 또 계속 고쳐 나가겠죠.


그런데 남북이 이렇게 경색되니까 당장 책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어요. 북한과 더 합의를 해야 하는데, 만날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대신 우리가 먼저 웹 사전을 만들려고 해요. 아마 2019년 초 정도에 세상에 내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이사전을 만들려면 우선 개성공단이 회복되고 금강산이 다시 또 문이 열려서 우리가 만나는 장소가 개성이 되거나 금강산이 될 수 있어야겠죠. 지금은 만난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심양하고 베이징에서 만나는데, 거긴 남의 땅 아닙니까. 서로 오가며 만나야죠.


만나서 토론하고 합의하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두음법칙 등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어요. 어느 편이 맞다 틀리다 보다는 각자 체제의 특성상 쉽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그동안 많이 다투고 또 서로 양보해가며 많은 부분에서 합의를 봤습니다.


서로의 차이 인정해가며 만들어온 겨레말큰사전,

먼저 웹 사전 형태로 세상에 내보낼 것

 

Q. 말씀처럼 현재 남북관계가 어렵습니다. 분단이 70년을 넘었고, 통일은 아직도 멀게만 보입니다

 

분단은 단지 지금의 우리만 설움 받는 비극이 아닙니다. 우리 역사를 보면 사실 분단이 많았어요. 가령 신라가 통일했다고 했죠. 그건 통일이 아니에요. 평양 위 청천강도 갈까 말까 하는 그런 통일입니다. 그 위에는 발해가 들어섰습니다. 옛 고구려 땅에 발해가 세워진 거죠. 그걸 우리는 역사학에서 남북조 시대라 합니다. 바로 분단 아닙니까. 당시 중국 당나라에 빈공과(賓貢科)가 있었습니다. 당나라가 주변 국가를 통제하기 위해 인질 삼았던 왕자, 왕실 인척들을 데려와 볼모로 삼았는데 그들이 치르던 시험이었어요. 인질을 격려하기 위해 만든 아카데미라는 감옥인 것이죠. 그 빈공과 제도가 후기에는 느슨해져서 왕실의 자제 대신으로 평민층에서 비공식 선발을 통해 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신라 육두품의 자제인 최치원이 가서 1등을 합니다. 그 전까지는 발해 출신들이 연거푸 2년 동안 1등을 했어요. 우리가 통일신라라고 하지만, 발해가 존재했던 분단 상태였던 것입니다.


고려 때 이르러 비로소 민족국가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도 평안북도는 없었습니다. 서희가 나중에 여진족으로부터 강동 6주를 찾아오죠. 하지만 그것도 임시였어요. 우리가 최초로 통일국가의 영토를 확정한 것이 조선 세종 때입니다. 6진 개척을 통해 비로소 통일국가가 된 것이죠. 이렇게 우리는 사실 통일국가로서 산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는 통일은 이전으로 돌아가는 재통일이 아닌 새로운 통일입니다. 역사상 한 번도 우리가 완성해보지 못한 새로운 통일이에요. 우리가 분단을 살았고, 통일시대를 얼마 못 살았다고 하지만 그것이 슬픈 일만도 아닙니다. 역사는 늘 분단과 통일이 교차해 왔어요. 이집트도 람세스 시대 이전까지는 상하로 나누어져 격렬하게 싸웠어요. 그러다 람세스 시대 이르러 통일을 하죠. 이스라엘도 유다와 아주 적대적이었어요. 그게 솔로몬 왕, 다비드 왕에 이르러 통합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늘 세상은 분단 혹은 분열 아니면 통일이 교차해 왔습니다.


이런 순환사관에 의해서, 나는 비관이나 낙관 따위의 역사관의 추이만이 역사를 보는 인식의 척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그냥 하나의 사실일 뿐이에요. 어느 시대에나 있는 사실. 그래서 나는 추억의 통일이 아니라 전혀 우리가 모르는 미래의 암흑 속에서 찾아내는 통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위한 통일이지, 과거로부터, 옛날로 돌아가는 통일은 아니죠. 통일은 전혀 없는 미래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그런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Q. 통일은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빨리 오는 것도 아니고, 싫다고 해서 안 오는 것도 아닌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니까, 조금 여유를 가지고 통일을 바라보자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지금 남북의 분단에서 노출되는 우리 민족성, 우리 개인의 인간성이 어떠합니까. 인터넷상의 댓글들을 보세요. 참 야비합니다. 추악합니다. 이런 인간성으로 통일해서 뭣 합니까? 그건 아니죠. 앞으로 통일된 사회는 정말 아름다운 미학의 대상이 되는, 미학을 만들어낼 수 있는, 미학의 진원지로서의 신세계여야 합니다. 북한 역시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동안 남북은 서로 상대방을 핑계 대며, 자신들의 체제 강화를 합리화하고 권력을 유지했어요. 이런 낮은 수준의 정치 행태에서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런 모든 것들이 지양되는 그런 통일을 꿈꿉니다.

 

통일은 어제와는 다른 새로움, 아름다움으로 다가와야,

조급해 말고 100년의 통일 노래를 부르자

 

Q. 그렇다면 새로운 통일에 대한 큰 그림은 무엇일까요.


정화된 통일입니다. 통일 자체가 남북 모두에 정화작용을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하죠. 예전 농경사회 때 우리 인간성은 이러지 않았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알고 서로 도와가며 살았죠. 아니 기나긴 채집 수렵 시대 인류는 전쟁을 몰랐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개인과 개인이 벗이 아닌 경쟁자일 뿐입니다. 네가 없으면 내가 1등 할 수 있다, 얘를 죽여야 내가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적과 적입니다. 얼마나 살벌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살벌한 관계악화가 존재합니다.


이런 것을 전부 바꾸려면 커다란 운동이 일어나야죠. 아마 천지와 자연이 호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나야 합니다. 역사적 미봉 행위로서 통일하는 것은, 질적인 통일이 아닐 바에는 저는 그다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통일을 해보세요. 가진 자가 못 가진자를 얼마나 핍박하겠습니까. 지금 통일하면 남한이 얼마나 북한과의 상생을 실현하겠습니까. 무지막지할 겁니다. 이건 더 불행한 분단이죠.


이런 것을 볼 때 제가 생각하는 통일은 다연방제의 개척입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가 있어요. 그 작은 나라가 동네 반상회처럼 나눠져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민주주의를 합니다. 아시아에도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죠. 우리도 북한이 주장하는 식의 연방이 아닌 다연방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있는 도를 더 개편해서 한 스무 개쯤 만들어서, 그 지역의 지사가 자체 선거를 통한 수상이 되는 공화국, 즉 국가체제로 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윤번제로 외교와 국방을 담당할 대통령을 추대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강원도 수상도 대통령을 할 수 있고, 제주도 수상도 대통령을 할 수 있어요. 각 공화국은 선거제도를 운영하고 중앙정부의 대통령은 추대제로, 윤번제로 돌아가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소외지역이 없어지게 되죠. 그리고 각 공화국이 각자의 특화산업을 만들어서 무역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스위스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다연방제를 해야 우리가 국론을 만들 수 있어요. 안 그러면 국론은 다 분열됩니다. 다연방제 안에서 각각의 다양성이 모여 그것을 통합하는 과정 자체가 정치행위로 되어야 하겠죠. 제가 오랫동안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통일을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보지 않습니다. 점이 아니라 선이죠. 긴 과정입니다. 지금도 나는 통일의 과정이라 생각해요. 이런 아픔이 있어야 통일의 가능성도 있어요. 그리고 분단을 겪고, 전쟁을 겪은 체험세대가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건 성급하다고 생각해요. 전혀 통일이 뭔지도, 분단이 뭔지도 모르는 미래, 내 증손자쯤 가더라도 유전인자로서의 통일이 있습니다. 그들이 통일해도 돼요.


그래서 나는 통일을 세기사업이라고 하죠. 적어도 100년 이상이라는 시간은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의 70년을 헤아리고 시작하던지, 지금부터 다시 100년을 헤아리던지 그건 모르겠어요. 그래서 최소한 100년 동안은 통일 노래를 불러야 통일의 씨가 뿌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내년이면 민화협 창립 20주년이 됩니다. 민화협과 같은 단체들이 선생님이 말씀하신 커다란 의미에서, 역사적인 과정으로서의 통일에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일단 나는 통일에 대한 구체적 과정으로서는 오스트리아 통일을 주목합니다.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얼마 있지 않아 통일을 했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네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프랑스군, 영국군, 미국군, 소련군이 각각 들어왔죠. 그들이 각자 합스부르크의 유산을 갈라 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참 현명한 사람들이었어요. 서로 적대하지 않았고, 수상을 했던 사람이 외무장관도 되고, 또 외무장관을 했던 사람이 백면서생이 되면서 소련 관할지역에 가고, 미국 지역, 프랑스 지역, 영국 지역에 가서 통일이 당신들에게 이익이라는 점을 충분히 설득합니다. 그리고 내부에서 사라진 민족개념을 강조하며 분열하지 않고 내밀한 통합을 이룹니다. 이렇게 해서 빠른 시간에 통일을 이룰 수 있었어요. 놀라운 것이죠. 우리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또 하나, 분단의 관리과정은 독일에게 배워야 합니다. 동독이 좀 못나긴 했지만, 그래도 게르만 민족의 위대함, 괴테를 낳고, 바흐를 낳고, 니체를 낳았던 그런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교과서에 상대방의 시가 실렸어요.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독에서는 서독의 방송을 들었어요. 이게 어딥니까. 그리고 동독에서 서독으로 편지가 왔어요. 물론 일정한 검열은 있었지만,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와는 생판 다른 분단입니다. 그들은 전쟁이 없었고, 우리는 전쟁이 있었기에 다르다고 하는 사람도 있죠. 핑계는 좋습니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도 완전히 전쟁으로 이뤄진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와 대만은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우리는 못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분단의 기술로서도 배울 것이 있고, 통일 기술로는 더 형편없는 수준인 거죠. 이것의 일부를 민화협이 생각하고, 또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내부 안에서의 조정과 화합 말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가 분단의 독백만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지금은 우리끼리만 얘기하고 있잖아요. 상대방이 있어야 대화가 됩니다. 이런 대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와 노력을 해야 되겠죠. 남에게 북이야말로 내일의 근본적인 파트너입니다.

 

Q. 마지막으로 꼭 들려주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겨레말큰사전 일꾼들과 민화협 일꾼들이 언젠가 함께 평양에 가고, 또 평양 쪽에서도 우리와 같은 일을 하는 활동가들이 서울에 오고 제주도에도 올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정리 염규현 민화협 정책홍보팀 부장

사진 김성헌 객원작가